“파리의 마레 지구에서 생긴 일 [What Happened in the Marais District of Paris]"
Chosun Ilbo, August 2009
나는 남편과 파리의 마레 지구 로지에 거리를 걷고 있었다. 문득 주변을 보니, 주변 사람들 모두 군침 도는 팔라펠 샌드위치(피타 빵에 병아리콩과 야채를 채운 중동 별미)에 열중하고 있었다. 우리는 잽싸게 테이크아웃 창구 앞에 늘어선 기나긴 줄의 맨 끝에 가 섰다.
그때 바로 뒤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20대 초반의 남녀 셋이 뭘 주문할지 의논하고 있었다. 메뉴는 프랑스어로 쓰여 있었는데 이들은 프랑스어를 모르는 것 같았다. 여행할 때 한국 사람을 만나면 나는 정말 반갑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들을 보며 나는 메뉴를 말해주고 싶었다. 나도 프랑스어는 잘 못하지만, 가끔 음식 기사를 쓰는 작가로서 메뉴 정도는 읽을 줄 알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일행 중 남자가 나를 봤다. 먼저 남편을 보고 나를 보는데, 표정이 안 좋았다. 성난 듯, 부정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즉시 돌아섰다. 전에도 그런 무례한 눈빛을 경험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절반은 일본인, 절반은 백인 미국인이다. 일본에서는 그를 절반의 아시아인으로 여기지만, 미국에서는 그를 이탈리아 사람이나 필리핀 사람, 아니면 스페인 사람으로 생각한다. 검은 머리에 짙은 갈색 눈동자, 그리 크지 않은 체격 때문이다. 파리에 왔더니 프랑스 사람처럼 보이는지, 모두들 그에게 프랑스어로 말을 건넨다. 어딜 보나 완벽한 아시아인인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다르다. 나는 한국인과 결혼하지 않은 모든 한국인이 잘 알고 있는, 유쾌하지 않은 비밀을 알고 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백인이나 흑인 남성 동료와 길을 걷거나 밥을 먹을 때면, 마치 내가 무슨 부끄러운 짓이라도 한 것처럼 편견에 가득 차서 힐난하는 눈초리를 보내는 한국인을 만나곤 한다. 그런 게 뭐 그렇게 괴롭지는 않다, 고 말하고 싶지만 실은 괴롭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상처받는다. 엊그제 신문을 보니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100만명이 넘고, 그중에는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이 12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또 그중 대부분은 여성들이라고 한다. 글로벌 국가인 한국에서 사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소식에 우선 걱정이 앞섰다. 이들도 혹시 그런 눈빛으로 상처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며,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반도체와 휴대폰, 대형 선박을 온 세계에 팔고 있는 글로벌 사회의 일원인 한국인들이 순혈주의, 인종주의에 붙들려 있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 같다.
팔라펠 샌드위치의 줄은 더 길어졌다. 주방을 흘깃 들여다보니 유대인 남자 셋이 부지런히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는 인종주의가 낳은 아픈 역사를 생각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로지어 거리 주변에 유대인들이 정착했고 제2차 대전 중 마레 지구는 나치의 표적이 되었다. 팔라펠 샌드위치를 기다리는 긴 줄에 서서 나는 인종적인 이유로 체포되고 학살당한 프랑스 유대인들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지난 2년간 나는 도쿄에 살면서 재일교포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글을 썼다. 직접 살며 겪어본 일본은 '단일민족 국가로 민족적 순수성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기는 나라다. 바깥에서 들어온 것은 일종의 오염물로 여겨진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대조차 여전히 '가이진-외국인'으로 간주된다.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 이렇게 민족과 인종 문제에서 당혹스러워하고 비틀거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인종적 순수성'이 길게 보면 과연 이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심하게 되었다. '차이'에 대한 불관용과 증오는 건강하고 활기찬 사회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나는 확신한다.
다시 로지에 거리. 우리 앞에는 여전히 줄이 길었다. 팔라펠은 원래 이집트에서 왔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기네 음식이라고 주장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팔라펠이야말로 자기네 '국민 별미'라고 말한다. 나는 내 뒤에 서 있는 한국 젊은이들과 이 '디아스포라 음식'의 역사를 공유하고 싶었지만, 나와 남편을 향한 순간적인 거부의 눈빛을 넘어설 수 없었다. 특히, 언제나 한국인을 존중해온 내 남편이 상처받을까 봐 걱정되었다.
그렇게 놓쳐 버린 기회가 아깝다.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과 어려서 한국을 떠난 재미교포 여성, 그리고 한국과 한국인을 너무나 좋아하는 그의 남편은 머나먼 프랑스 땅, 유대인 거리에서 1m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낯선 이들이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은총의 순간은 팔라펠 샌드위치를 기다리는 줄에도 찾아오며, 나는 그 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 우리는 낯선 메뉴를 서툴게나마 번역할 수도 있었고 우리의 끔찍한 프랑스어 발음을 놓고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었다. 우리는 그 만남에서 기쁨을 얻을 수도 있었다. 민족과 인종의 순수성에 대한 편견과 불관용을 넘어섰더라면.